웃음을 멈추지 않게 하는 약 구함

자주 웃는 사람은 과연 정말로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행복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일까? 요즘처럼 황사로 하늘이 뿌옇게 흐려지고 바람으로 머리에 먼지가 스멀스멀 스며들어오면 차라리 억지로 웃게 만드는 약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인간의 겉과 속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한껏 웃고 있는데 나쁜 기운이 들어오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희망적인 의도에서라도.


요즈음 저녁에 케이블TV에서 방송되고 있는 일본드라마 ‘속도위반 결혼’(できちゃった結婚, 2001)은 일단 재미있다. 보다 보면 웃음이 난다. 만화 같은 설정도 그렇고 전개방식도 흥미롭다.


주 목할 점은 남자주인공 타케노우치 유타카(竹野內豊)가 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물론 어느 드라마에서나 귀하게 취급 받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일에 목숨을 걸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취약한 것은 일이 아닌 다른 것 (예를 들면 가족의 사랑)에 집중하는 것이다.


상대역인 히로스에 료코(廣末凉子)와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식이 성장하고 다른 가족구성원과 공동체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직업전선에서의 변화와 가정과의 사이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드라마상에서의 답은 진부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매일 선택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의 남성과 여성들에게는 그리 진부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말로는 가정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시간배분에 있어서는 결국 자신의 일과 가정사이의 선택에서 일쪽으로 기우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자신의 투자시간이나 노력만큼 보상을 주는 것일까?

마츠 다카코(松たか子) 주연의 드라마 ‘언제나 둘이서’(いつもふたりで, 2003)에는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간 사람일지라도 한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는 인물을 보여준다. 43세의 거물TV사회자로 분한 니시무라 마사히코(西村雅彦)는 항상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시청률을 높이고 바람을 피우지만 그도 한번의 치명적인 실수를 하면서 몰락하게 된다. 결국 자연이 인간의 성공이나 실패에 무관심하다라는 것은 다른 개념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흥미로운 것은 일이나 공상이나 감상에 젖어있는 남자들에게 변화와 영감을 제공하는 것은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재미소설가 이창래의 ‘A Gesture Life’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견지하는 주인공 하타는 한국, 일본, 미국의 정체성 속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결국 정신대로 끌려간 한국여성, 입양한 한국인 딸, 늙어서 사귀게 된 애인이라는 여성들에게서 변화의 끈을 찾게 된다.


하타는 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상당한 노력을 하는데 결국 그 대상만이 조금 바뀌었을 뿐 인간이 집착하려고 하는 그 구조는 동일한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더니즘의 대가 조셉 콘라드의 장편소설 ‘Victory’도 애처로운 남성상이 하나 나오는데 하이스트라는 이 남자주인공은 세상을 무시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염세주의자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레나라고 하는 여성으로 인해 세상과의 악연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추구한 고립에서 파멸로 이어지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 변화를 촉발시키는 것은 바로 인간의 겉과 속의 메워질 수 없는 간극. 주변 인물들과 주요 인물들간의 의사소통은 계속적으로 엇갈리는데 이는 겉으로 표현되는 모습과 실제 본인들의 진심이 엉뚱한 곳을 교차하기 때문이다. 매번 ‘솔직’한 대화를 원하는 우리들은 결국 남에게만 그 솔직성을 요구하고 자신에게는 항상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또 다른 은둔자로 나오는 이는 ‘언제나 둘이서’에서 주연보다 멋진 조연인 구로사와 토시오(黑澤年雄). 58세의 '무라코시서점(村越書店)'의 주인으로 분한 그는 완고하고 출판계에 파격적인 발언을 일삼아 주목을 모으는 인물역에 정말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드라마상에서라는 작위성은 있지만 마츠 다카코가 가져온 변화는 그로 하여금 새로운 결정을 하게 만든다. 당돌한 그 여성이 은자흉내내기 놀이에 빠져있는 남자를 움직이게 만든 대사: “(당신은) 빛이 어두워져서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빛이 너무 밝아서 눈이 먼 것.”


일이건 가정이건, 고립이건 변화이건, 궁극적인 선택은 결국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내리기 마련이다. 어느쪽이 사실 중요한가라는 문제보다 주어진 시간에서 그 비율을 정하는데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불행히도 그러한 균형감각은 항상 치명적인 변화가 자신을 엄습해 왔을 때 비로소 생긴다는 것이다.


벌써 10년도 넘은 것으로 기억되는 머라이어 캐리의 뮤직비디오 중에서 유난히 좋아하는 노래는 바로 ‘I’ll be there’이다. 지금의 원숙미와는 달리 당시의 MTV에서 마련한 라이브 부대에서 열창을 하는 그녀는 약간 투박하지만 가슴속에 뭔가를 뭉클하게 만드는 투박함이 넘쳐 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순수한 열정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변화의 소리들. 그래서 그런지 노래하는 내내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댕글댕글 달려있다. 바로 그 웃음을 내 퉁퉁 부은 얼굴에도 걸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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