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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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왕조실록 CD-ROM의 의의: 이것은 혁명이다!


1997년 4월 17일에서 21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왕립학술원과 스톡홀름 대학교 주최로 유럽 지역 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학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19일에는 대회의 초청 행사로 서울시스템(주)이 개발한 <국역 조선왕조실록 CD-ROM> 시연회가 마련되었다. 컴퓨터 장비가 갖추어지고 CD-ROM 데이터베이스의 내용과 기능이 설명되는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100여 명의 학자들은 드디어 오버헤드 프로젝트를 통해 CD-ROM에 들어 있는 16만 페이지 분량의 데이터가 순식간에 검색되는 순간 순간을 목도하게 되자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 모두들 엉거주춤 반쯤 일어난 자세로 모니터 화면이 바뀔 때마다 “Wow!” 하는 감탄사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시연이 끝났을 때, 30년 동안 한국사 연구에 매진해 온 한 학자는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이것은 혁명이다! (This is a revolution!)”


옥스퍼드 대학의 한국학 담당 제임스 루이스(James Lewis) 교수는 당시 시연회 현장의 상황과 분위기를 이와 같이 전하고 있다(본문 285-291쪽 참조).


루이스 교수는 <조선왕조실록> CD-ROM 데이터베이스의 의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조선 경제사 연구를 위해 <실록> 국역본을 3년 이상 뒤지고 있던 한 일본인 학자에게 단 3시간 동안 CD-ROM을 검색해서 전달한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루이스 교수는 <실록> CD-ROM 데이터베이스 개발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3년이 넘게 소요된 작업을 단 3시간만에 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혁명’에 의해 역사 연구의 과정은 물론이고 과거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CD-ROM>의 개발은 하나의 혁명이다. 지난 1995년 <실록> CD-ROM이 개발된 이후 루이스 교수의 지적대로 역사 연구 과정과 과거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한편으로 학계에서는 CD-ROM 데이터베이스의 강력한 검색 기능에 힘입어 조선 시대 전반에 걸친 통시적 주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그 연구 성과가 속속 발표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 전반적으로도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우리 역사, 특히 조선 시대를 다룬 대중 역사서들이 활발하게 출간되고, 역사 관련 TV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정규 방송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Click into the Hermit Kingdom 역시 <조선왕조실록 CD-ROM>에 힘입은 하나의 작은 성과이다. 국내외의 외국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록 CD-ROM>에 의거하여 조선시대 500년 역사를 주제별로 재구성하여 소개할 목적으로 출판되었다.


2. 이 책의 집필과 출간 경위: 영자 신문 사상 최장 기간 연재


이 책은 영자 신문 <코리아 타임스(The Korea Times)>에 연재되었던 기획 기사를 근간으로 한다. <코리아 타임스>는 지난 1998년 2월부터 2000년 2월까지 매주 화요일 총 100회에 걸쳐 “Click into the Hermit Kingdom”이란 제목으로 조선 왕조 500년 역사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아우르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였다. 1997년 겨울에 당시 <코리아 타임스>의 한동수 문화부장(이후 편집국장 역임)은 학계와 문화계 및 언론계에서 <조선왕조실록 CD-ROM>의 개발에 힘입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던 우리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움직임과 그 성과를 <코리아 타임스>의 주요 독자들, 즉 국내외의 외국인들에게도 전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구상하였다.


이를 위해 한동수 부장은 <실록 CD-ROM>을 개발한 서울시스템(주)과 부설 한국학데이터베이스연구소의 양해와 협조를 약속받는 한편, 그의 아이디어를 실천할 담당 기자를 물색하였다. 그 때 한 부장의 눈에 띈 장본인이 이 책의 필자 양승진 기자(현재 코리아헤럴드 기자)였다. 영자 신문 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막중한 기획이 이제 막 수습 과정에 들어가 있던 신출내기 기자에게 떨어진 것이다. 한 부장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신참 기자가 “서강대 영문과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한 실력 더하기 유학자 집안 출신으로 한학에 기본적인 조예가 있을 것 같아” 발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데스크의 도박은 적중하였다. 이 기획물은 영자 신문 사상 최장 기간 연재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독자들로부터 그만큼 열렬한 호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담당 양승진 기자는 이 연재 기사로 한국언론인협회가 수여하는 ‘이 달의 기자상’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연재 과정은 기사 작성부터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재 기사의 기획 의도는 단순히 500년 조선 역사를 소재 단위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시사적 현안들과의 연관성을 찾아보자는 데 있었다. 예를 들어 IMF 사태로 통칭되는 경제 위기,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 전반의 구조 조정 같은 현대 우리 사회의 동향이 비단 오늘날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일어난 현안이 아니라 500년 역사의 조선 시대에도 유사한 역사적 선례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주제 의식인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또 그래야만 오늘날의 현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고 또한 타당한 해법이나 대안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시사적 현안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실록 CD-ROM>에 수록된 방대한 정보를 선별하고 그 의미를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동시에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 역할은 한국학데이터베이스연구소의 연구실장 이남희 박사가 맡았다. 이남희 박사는 <실록>이 전하는 방대한 관련 정보를 일일이 검토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해설하였다. 연재에 앞서, 그리고 연재가 시작되면서 담당 양 기자와 이 박사는 매주 2-3차례 치밀한 토론 과정을 가졌다. 토론에서 두 사람은 그 주의 주제를 정하고, <실록 CD-ROM>에 들어 있는 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검색된 자료를 평가하고, 그 현대적 의미를 분석하였으며, 그 결과를 양 기자는 영문 기사로 작성하였다.


한편 연재가 계속될수록 두 사람은 <조선왕조실록>의 경이로움에 더욱 매료되었다. <실록>은 자료의 보고일 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을 되돌아보는 지혜와 통찰력의 원천이기도 했다. <실록>이 전하는 조선 시대는 결코 지나간 과거가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500년 조선 역사에서 그 유사한 선례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코리아 타임스>에 2년간 연재된 기사를 발췌하여 재편집한 것이다. <코리아 타임스>의 연재가 끝난 이후 국내외의 독자들로부터 그 내용을 종합하여 한 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많았고, 이에 부응하여 필자들과 동방미디어 출판부는 약 6개월여에 걸쳐 단행본 편집 작업에 착수하였다. 총 100회의 연재 기사 가운데 내용이 중복되는 기사를 통합하여 65편의 에세이로 조정하고, 현재 시점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표현과 시제를 바로 잡았다.


또한 단행본으로서 이 책은 달리 국내외의 외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되 현대 한국 사회의 동향에 어두운 독자들까지 염두에 두고 일정 부분 내용도 보충하였다. 당초 연재 기사에는 매회 1종 이상의 참고 도판이 수록되었으나 이 책에서는 지면 관계상 수록 종수를 제한하는 대신 역사 유적, 기물, 서책, 회화 등 에세이 주제에 적합한 관련 도판을 새롭게 선정, 배치하여 도판 자료만을 넘겨 보아도 조선 시대 및 현대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편집하였다. 또한 용어 해설(Glossary)을 새로 작성하고 색인을 두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3. 이 책의 구성과 내용: 조선 시대와 현대의 공시적 이해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었다. <코리아 타임스>에 총 100회에 걸쳐 연재된 기사를 65편으로 통합 조정하고, 주제별로 묶어 5개의 장으로 구분하였다. 먼저 “서론”은 <조선왕조실록>의 편찬 과정과 사관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다. 사관 제도라는 독특한 시스템에 대한 외국인 독자들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며, 아울러 이 책의 구성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한다.


제1장은 조선 시대의 정치와 외교를 주제로 하는 장이다. <코리아 타임스> 연재가 시작된 시기가 마침 IMF 경제 위기의 한복판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던 때여서, 서두에는 그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한창 정부 부문과 민간 부문의 구조 조정 문제가 논의되고 있던 상황과 관련하여 조선 시대 조정에서도 녹봉 부담이 큰 관리들에 대한 “정리해고” 문제가 논의되었다는 사실이 소개된다. 또한 선왕의 사망과 함께 “통곡” 속에 새로운 왕이 즉위하는 절차가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으며, 그밖에 조선 시대의 형법, 대 중국 대 일본 관계, 거북선을 둘러싼 신화와 진실 등을 다루고 있다.


제2장은 사회와 경제 문제를 다룬 장이다.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이 극히 어려워진 상황에서 구직자들의 영어 실력은 더욱 강조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시대 사람들은 외국어 공부, 중국어 공부를 어떻게 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짚어 본다. 조선 시대의 역관 제도와 중국어 교재인 <노걸대>에 대한 조명이 시도되고, 최근의 이른바 옷로비 사건과 유사한 조선 시대의 부정부패 스캔들, 망년회 풍속도, 시전 상인들의 독점 경제 등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이 이어진다.


제3장은 조선 시대의 교육과 문화 및 전문가 집단에 관한 장이다. 당시의 최고 학부 성균관 유생들이 벌였던 데모, 오늘날의 비아그라 열풍을 연상케 하는 만병 통치약에 대한 당시의 관심, 조선 시대의 의료 수준, 대외 첩자 활동이 주요 임무 중의 하나였던 화원들에 대한 설명이 시도된다.


제4장은 자연 현상에 대한 조선 시대의 인식을 설명한다. 코끼리나 낙타와 같은 희귀한 동물이 조선 사람들에게 처음 소개되었을 때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 혜성과 같은 자연 현상은 어떻게 관찰 기록되었으며, 갑작스런 자연 재해에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등을 설명한다.


제5장은 여성 문제에 관한 장이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조선 시대에도 호화판 결혼식과 과다 혼수는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고위 공직자들을 중심으로 섹스 스캔들이 일어나는 한편으로, 사회의 이중 잣대로 억압받던 당시의 여성상이 실감있게 소개된다.


이와 같이 5개의 장을 통해 이 책은 500년 조선 왕조의 사회상과 현대 한국의 사회상을 연관지어 공시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나간 역사의 연대기적 소개에 그치지 않고 과거가 오늘의 역사에 역동적으로 숨쉬고 있음을 모든 독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4. 이 책의 지은이


— 양승진 (Yang Sung-jin)


서울 출생.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 타임스>에 입사하여 “Click into the Hermit Kingdom” 기사를 100회 연재하였으며, 그 공로로 ‘이 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로이터 통신을 거쳐 현재 코리아헤럴드 경제부 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 이남희 (Lee Nam-hee)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조선 시대 역관 제도’에 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데이터베이스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로 있으며, 다수의 저서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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